작은 크리스마스 카드를 9장째 쓰고 있다. 성탄절을 기다리는 나만의 전통이다. 종교와 관계없이 내게 성탄절은 빨간 모자의 산타와 빨간코의 루돌프가 장식된 케이크의 날이다.
그렇다. 사적으로 12월의 가장 중요한 이벤트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먹는것. 적절한 시간에 만족스러운 공간에서 달달한 케이크를 한조각이고 두조각이고 잘라 먹어야 한다. 맛은 있을수록 좋고 장식은 촌스러울수록 좋다.
한번은 이 전통을 지키지 못했다. 2011년도 캐나다에서의 크리스마스였다. 해당 문화권에서는 이 날이 몹시도 가족적인 기념일인 탓에 모든 상점이 일찍 문을 닫았다. '내' 케이크는 아무곳에서도 구할 수 없었다. 고요한 도로를 질주하는 버스에서 나는 서럽게 울었다. 그리고 26일이 되어서야 급하게 마트에서 사온 초코케이크를 먹었다.
나의 전통에 따르면, 적절한 시간은 분명히 24일 저녁이지만 장소와 공간은 누구와 보내냐에 달려있다. 가족과는 익숙한 우리집, 남자친구와는 자취방이나 외국여행 중 이국적인 숙소, 친구와는 성탄절 분위기가 물씬 나는 레스토랑이 '때와 장소' 중 장소를 맡는다.
나는 나만의 이 전통이 소중하고 소중하다. 케이크를 기다리며 한달내내 준비한다. 크리스마스 캐럴로 플레이리스트를 채우고 산타 스웨터를 꺼내 입는다. 그리고 성탄절이 이주일 전쯤으로 다가오면, 케이크 다음으로 중요한 크리스마스 카드를 쓰기 시작한다. 오늘은 내일 우체국에서 부쳐야 하는 카드들을 썼다. 9장쯤 쓰고나니 카드력이 소진됐다. 카드력이란,
상흔에서 배어 나온 악취는
사나운 짐승을 꼬여 내거나
동병상련의 병자를 불러 모아
조악한 돌담을 둘러치고
서로의 상흔을 헤집거나 헤집어진 채
배시시 멍청한 웃음을 만든다
저 멀리 산안개는 깔리는데
이 돌담은 언제쯤 날아갈까
우직한 환자들은 구원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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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어떤 것을 간절히 그리워하여 그것만을 생각함.
¶ 동경의 대상/이상향에 대한 동경. - 「2」마음이 스스로 들떠서 안정되지 아니함.
「동사」
- 「1」【…을】어떤 것을 간절히 그리워하여 그것만을 생각하다.
¶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다/동경해 온 유학길에 오르다. - 「2」마음이 스스로 들떠서 안정되지 아니하다.
계속해서 감정을 관찰하고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래서 끊임없이 자신에게 묻고는 한다. 나는 스스로를 마치 무한한 자원인 양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을 돌보는 습관이 들어있지 않아, 의식적으로 감정을 확인하지 않으면 종종 선을 넘어버리곤 한다. 선을 넘어 모두 소진해 버리는 것이다. 그것이 감정이 되어 버리면 곤란하다.
최근 내 무료했던 감정선에 흥미로운 파동이 생겼다. 파동이 잔잔하게 번져 나갈 때마다 조금씩 다른 모양의 원을 그렸다. 익숙한 듯 아닌 듯, 경험한 듯 아닌듯한 감정이 꾸준히 일상에 스며들었다. 반대의 입장이 되어 익숙한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그러면 비로소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게 된다. 지난 기억을 이렇게 되씹는 경우에는 우울해지기 마련이다. 이해하고, 반성하고, 후회하고, 배우고 나면 충분한 자기 위안과 함께 자책의 굴레에서 벗어난다. 안도와 함께 역시 이야기는 비극에서 나오는가 하는 두려운 절망이 남는다.
나약하기 짝이 없는 주제에 과분한 삶을 받아 때로 상황은 극적이고 감정은 증폭된다. 쉬운 것보다 복잡하고 곤란한 길을 항상 택하는 성향은 딱히 도움 될 것 없어 보인다. 덕분에 이야깃거리가 끊이지 않는 것이 그나마 좋은 걸까. 사족이 붙지 않을 명백하고 명확한 사랑을 주고받고 싶을 뿐인데 나는 그것이 불가능한 상황에 자꾸 빠지고자 한다. 결국 내 사랑은 순수할지라도 분명할 수 없는 상황으로 지극히 제한적인 관심만을 돌려받는다. 애써 부정해 보아도 어찌 되었든 나는 애타게 보답을 기다리게 된다.
머리와 마음은 대안은 없는 듯 매번 기를 쓰고 따로 놀아 나를 쩔쩔매게 한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라며 둘 중 하나를 설득해보고는 한다. 실패와 시도를 거듭하지만, 사바나의 말처럼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상처받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그래서 굳은 결심을 해보지만, 항상 그렇듯 상처는 거세게 마음을 부수고 머리는 혀를 찬다.
나는 부수어진 마음의 조각을 손에 쥐고 망연히 너의 눈을 본다. 너의 눈에 나의 손이 비치길 간곡히 빌어본다. 내가 한 선택에 자발적으로 내린 결정이어도 너가 나를 소중히 해주기를 내가 너에게 더 소중해지고 싶은 바람은 결국 나의 뒤를 치고 내 무릎을 꿇린다.
너는 나를 쓰다듬으며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대했다. 너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나는 모르지만 나는 너에게 특별했으면 했다. 너를 존경하고 동경하는 마음이 샛길로 빠지지 않도록 나는 더 주의를 기울였어야 한다. 마음은 한없이 들떠 너무나 빨리 너에게 가버렸다. 나는 너가 좋아지고 좋아하고 마음을 열고 있는 힘껏 마음을 준다.
그리고 오늘 너의 앞에서 나는 무신경하게 상처 받고 어디 아프다 할 수도 없어 내 처지를 딱하게 여겼다. 소중히 여겨지지 못하는 듯한 쓸쓸함으로 자조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불쌍한 나는 한 마리의 불나방이 되어 다시금 불과 같은 너에게 달려고만 싶어 한다. 이토록 미련한 나를 너는 구원해줄 마음이 없다. 나는 너에게 간청하고 빌고 빌지만 너는 내게 불같기만 하다. 한없이 이기적인 너로 향하는 나의 마음이 한없이 애달프다. 내 머리는 수백번이고 수천번이고 되풀고 되풀어 경고하지만 무식하기 짝이 없는 마음을 구할 길이 없다.
나는 더이상 배고프지 않다. 너의 앞에서 나는 먹지를 못한다. 먹어서 무엇에 쓸지 모르겠다. 내 낮과 밤은 너와 함께여야 의미를 갖고 그 외의 생활은 허상같아. 너와 행복한 나도 허상 같아 나는 꿈꾸지 않기로 마음 먹는다. 곪아 갈 상처에 맴돌던 나의 조약한 결단을 너에게 에둘러 말해 보았다. 서운한게 당연할 관계를 너와 맺고 싶지 않아 나는 혼자 모든 것을 짊어 지고자 하니. 나를 단호하게 대해 주기를 이렇게 부탁해.